88분 – 그래서 내 88분은 어떻게 해주실거죠 3/10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만 어차피 안봐도 되는 영화입니다)
우리들은 무력한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내는 것을 즐긴다. 88분의 주인공에게 부족한 점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주위의 여성들을 꼬드기는건 선수이며 심지어는 자신의 학생들에게까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존경받고 멋진 교수이다. 이러한 교수가 심지어는 자신의 일터와 주위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다? 우리는 이런 주인공을 보면 큰 공감도 가지 않은 뿐더러 이야기에 몰입시켜주는 카메라 역할의 주인공에 몰입을 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이렇게 완벽한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놔둔 영화들에 큰 관심이 없을 뿐더러 감독들도 알고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은 모른 듯 하다.
만약 캐릭터가 완벽하다면 감독들은 이 캐릭터에 아주 극심한 결합을 부여한다. 예를 들어 나를 찾아줘(Gone Girl)의 주인공은 키 크고 잘생겼으며 교수라는 캐리어까지 부족한 점이 없다. 그러한 그가 가진 결점이라면 아내가 있음에도 자신의 학생과 불륜을 저질렀던 것이며 자신의 아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을 중단했다는 점이다. 더욱 접하기 쉬운 영화인 히어로 영화에서는 어벤져스 2에서 나오는 퀵 실버가 있을 것이다. 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어떠한 히어로도 그를 이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감독은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있어 최대한 그를 배제하려고 하였으며 후속작에서 그가 너무 강한것을 염려하여 그가 사람을 지키다가 죽은 것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우리들의 히어로 슈퍼맨이 있다. 슈퍼맨은 우리가 알다시피 강한 힘과 빠른 스피드, 멋진 체격과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보통 일반인은 가질 수 없는 맑은 정신으로 무장한 완벽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그를 이기는 방법은 크립토나이트라는 광물로 그를 상처입히고 무력화 시키는 것이다. 물론 배트맨은 그를 상대하기 위해 이것 저것 준비를 한 것도 있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그를 이기는 방법은 거의 없는 완벽한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는 맨 오브 스틸에서 이런 그가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쳐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그와 같이 성장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전 슈퍼맨 영화들은 그가 얼마나 멋있고 위대한지를 보여주지만 당시 미국 = 슈퍼맨이라는 시대상을 생각하면 그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88의 주인공을 보아라. 그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굉장히 과격하게 가르치는 동시에 캐리어 적으로도 교수로도 주위의 인망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보통 이러한 캐릭터들은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보다는 결핍이 있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연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드라마 블랙 리스트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나머지 조연들을 항상 챙기는 레이먼드 레딩턴이 있다. 그는 앞으로 적극적을 나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뒤에서 정보를 알려주거나 스파이 답게 대부분의 작업들을 뒤에서 처리한다. 만약 그가 적극적으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카메라에 담는 경우는 많이 없다. 굉장히 중요한 순간에 그가 등장하여 정리하는 엑스 마키나적 역할을 많이 한다. 그러한 완벽한 캐릭터를 너무 담지 않는 것으로 드라마는 좋은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 또 다른 좋은 예로는 양들의 침묵과 레드 드래곤의 한니발 렉터를 들 수 있다. 그는 심리학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그러한 그의 가장 큰 결핍은 연쇄살인범이라는 점과 사람들을 먹는 괴랄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한니발은 영화상 앞으로 직접적으로 나선 적은 손에 꼽는다. 물론 그가 감옥이라는 공간에 갇혀서 공간적 제약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주인공에게 또다른 연쇄 살인범을 잡을 단서를 던져준것이지만 말이다. 동시에 그는 주인공 클라리스의 심리적 문제도 상담해주는 정말이지 읽을 수가 없는 매력적이고 완벽한 캐릭터이다. 그러한 그를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 아닌 클라리스라는 주인공 인물 뒤에 배치해 그녀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캐릭터로 사용되었기에 영화에서 부담 없이 우리는 그의 등장을 바라 볼 수 있다. 권력이 높을 수록 카메라 밖에 배치를 하거나 뒷선에 놓아야 한다. 마치 체스판과 같이 폰 뒤에 각종 힘이 담긴 말들이 존재하듯이 각각의 캐릭터 배치에 신경을 써야한다.
여기서 필자가 가장 걱정스러운건 알 파치노가 뛰는 장면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의 건강을 신경 써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가 뛰는 장면을 우리들은 많이 보고 싶었을까? 우리들은 과연 그의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고 이곳 저곳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을까? 오히려 그를 브레인으로 두고 젊은 심리학자나 범죄심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나 (그래 처음에 나온 금발의 젊은 사람 괜찮던데) 데려온 다음 그를 필드에서 뛰어 놀게 하는 편이 관객들이 보기에도 편하지 않을까? 그가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필자는 공감을 하여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캐릭터적으로 말이다. 알 파치노는 연기의 신이다! 이 영화에서 볼거라곤 그의 연기 뿐이다. 물론 다른 영화보다 별로인건 있지만)
그리고 필자가 이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많다. 무엇보다 편집이 너무 중구난방이다. 촬영도 3명의 카메라 감독들이 제각각 스타일로 찍어서 랜덤으로 고른 다음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다. 일정한 느낌을 받기 어려운 촬영들과 그것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편집. 그리고 ost는 느낌 상 1개의 노래를 계속 돌려 쓰는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의 감정의 기승전결이 없으니 노래에도 기승전결이 없는게 당연하다. 무엇보다 설마 하겠지만 알 파치노를 섭외 해 놓고 그를 받쳐줄 연기자들을 못 뽑는다는게 말이 되는가? 돈 안주고도 알 파치노와 같이 연기하려는 뛰어난 배우들이 세상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텐데 그 중에서 고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제발 알파치노를 섭외하느라 그쪽 돈은 다 썼다는 변명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영화는 영화를 사랑한다면 무조건 보아야 한다. 그럼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와 감독, 그리고 배우들이 얼마나 자신의 일에 진심이고 노력하며 잘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감사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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