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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예술 영화에 가장 가까운 지브리 영화

영화

by 페이퍼무비 2023. 12. 1.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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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환상적인 모험 8/10

 

 

(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시작의 장면에서 공습경보의 경고음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사일렌이 아닌 주인공 마키 마히토의 어머니 히사코가 있는 병원이 불에 타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소리였다. 물론 공습에 의한 화재인지는 정확히 묘사되어지지는 않지만 이로 인해 마히토는 어머니를 잃고 만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아버지 마키 쇼이치가 새로운 공장을 세운 곳으로 가자 그곳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여동생이자 새어머니인 나츠코를 만나고 새로운 저택으로 가게 된다. 그 저택에는 신기하게도 왜가리라는 새와 집 뒤에 있는 성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의 시작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주 세계관으로 삼는 전쟁의 시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물론 작품에서는 전쟁을 직접적으로 그려내는 경우는 없고 단지 마히토의 아버지의 공장에서 전투기의 뚜껑 부분을 만들어서 집에 잠시나마 보존하고 있을 때 멋지다고 언급하는 장면 정도가 전쟁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또 다른 장면으로는 집에 도착하자 7명의 하녀 할머니들이 쇼이치의 가방을 열어보려고 하는 장면 정도이다. 그들이 가방을 열어보려고 한 것은 결코 남의 물건을 탐하는 것이 아닌 통조림이나 담배 등 물품들이 부족하여 그러한 상품들을 얻기 위해 그 가방을 뒤지는 것이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직접적인 전쟁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그러한 통조림이나 설탕과 같은 물자들은 거대한 공장을 운영하는 쇼이치 정도의 자본가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마히토가 새로 들어간 집의 뒤에 있는 성을 뒤로 하고 그는 피곤함에 침대에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타오르는 동시에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만다. 눈물을 훔치면서 일어난 마히로는 자신의 집 뒤에 있는 거대한 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그 성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나츠코와 할머니들이 자신을 찾고 있음에도 성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막혀 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진행 방향이 오른쪽이 아닌 왼쪽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성은 자신의 큰 할아버지가 지은 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의 큰 할아버지가 흔적도, 자취도 감추고 갑자기 사라진 일이라던가 자신의 어머니 히사코가 어린 시절 갑자기 사라지고 1년 후 사라졌을 때의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나는 등 여러가지 기묘한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 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마히토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지만 당연히 도쿄에서 올라온 도련님을 반갑게 환영할 학생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가벼운 다툼을 하지만 그는 돌아오는 길에 돌로 스스로에게 더욱 큰 상처를 낸다. 그 상처를 치료하는 중 그는 일어나는데 일어나자 마자 창문에서 왜가리가 자신을 향해서 마히토 살려줘라면서 자신의 어머니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이에 분노한 마히토는 목도를 들고 밖으로 나가 왜가리에게 목도를 휘두르지만 이를 가볍게 부셔버린 왜가리는 마히토의 어머니는 살아 있다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유혹한다. 그렇지만 이내 나츠코와 7명의 하녀 할머니들이 뒤를 따라오면서 이들을 내쫓고 마히토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리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장면으로 그는 눈을 뜨지만 하녀 할머니가 말하기를 전혀 일어난 적이 없어 걱정을 한다고 언급하고 그가 옷장에 가자 목도는 부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그가 가볍게 만지자 그 목도는 왜가리가 부신듯이 부서져버리고 만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상당히 복잡하게 넘어가기 시작한다. 분명 꿈이었을 텐데 왜 현실의 목도가 부셔지는지 그럼 아직도 꿈인지 등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설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침대의 이불이 왜가리를 연상케 하며 그 무늬들은 거울에 비춰지면서까지 계속해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반에 가면 알 수 있겠지만 목도가 부셔지는건 꿈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부셔진게 아닌 시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슨 마히토가 꾼 꿈이라는 것은 하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후반에 가면 죽음과 탄생을 이루고 있는 큰할아버지의 세계에서는 시간이란 하나의 출입구이며 마히토가 왜가리를 상대한 꿈 또한 하나의 시간대인 것이며 이가 미래에 있기 때문에 두번째로 꿈에서 일어난 마히토의 현실에서는 미래에 어차피 부셔질 목도였기 때문에 왜가리와의 싸움 없이도 목도는 부셔진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히토를 걱정한 나머지 쓰러져 버린 나츠코를 병문안 하기 위해서 마히토의 나츠코의 방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영화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붉은 색의 벽지와 고풍스러운 가구들은 마치 다른 나라의 방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심지어 방에는 단순히 침대만 있는게 아닌 탁자나 소파와 같은 하나의 집으로써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언니를 볼 면복이 없다면서 마히토의 흉터를 어루어 만지다가 쓰러지고 만다. 그녀를 뒤로 마히토는 꿈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활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화살의 효능은 좋지 않았다. 자신의 화살 뒤에 꼿을 깃털로 왜가리의 깃털을 꼽은 상태로 완성하자 나츠코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득 그녀가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마히토는 그녀를 찾기 위해서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들어간 숲속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길을 따라가보니 자신의 집 뒤에 있는 성이 나온다. 책으로 가득 이루어져있는 터널속의 불이 켜지면서 왜가리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그를 부른다. 이에 같이 따라온 키리코 할머니는 이를 적극 말리지만 그럼에도 마히토는 자신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그 성 속으로 들어간다. 성에 들어가자 왜가리가 잠들어있는 어머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진짜 어머니인지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만지자 물로 만들어진 형태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에 분노하자 왜가리는 계속해서 마히토를 조롱하며 그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마히토가 쏜 화살이 자신의 깃털이 들어가 있어 자신의 부리에 꽂히고 이로 인해 자신의 힘을 십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마히토가 왜가리를 다시 쏘기 직전에 꼭대기에서 장미가 떨어지며 깨지고 녹아 사라졌다. 그 성의 맨 위에 있는 어느 노인이 등장하여 새에게 안내하라고 명하자 새는 현실과는 다른 그 아래 세계를 안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닥은 모래처럼 왜가리와 마히토, 그리고 키리코 할머니를 끌어당긴다.  

 

 

 

 떨어진 세계에 갑자기 등장한 바다에 놀라는 마히토. 그리고 그 아래 세계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배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배를 보다가 어느 '나를 배우는 자는 죽는다'라고 씌여져 있는 무덤 앞에 놓여진 금의 문에 다가가자 펠리컨들이 마히토를 덮치며 이 때문에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그리고 여사공이 배를 돌려 다가와 펠리컨을 내쫓고 마히토를 구해준다. 마ㅅ히토를 도와준 후 그 문이 지키고 있었던 무덤의 주인에게 용서를 빌고 그를 데리고 그녀와 함께 동행한다. 그리고 추후 그 여뱃사공은 사실 같이 떨어진 할머니인 키리코 할머니의 젊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미리 풀어놓은 부초로 현실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이 생긴 물고기를 낚아내어 어둠지만 반 투명으로 비춰지는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팔기 시작한다. 그들이 물고기를 단지 사는 역할을 하는 이유는 살아있는 생물을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물고기를 해체하면서 만나는 또다른 생물로는 (아마 이미 굿즈 상품으로 나왔을 법한) ‘와라와라’라고 불리는 흰 마시멜로 같이 생긴 존재들이다. 그들은 물고기의 해체를 굉장히 반가워하며 자신의 몸 크기 정도의 바스켓이나 그릇을 들고 접근한다. 그리고 설정상으로는 그 생선의 내장이 와라와라들이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영양분이 된다는 설정인 듯 하다. 그날 밤 그들은 몸을 부풀려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들은 하나 하나가 영혼이다. 이를 본 여사공은 그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거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펠리컨이 등장하여 그들을 먹어치우자 갑자기 등장한 불을 사용하는 히메(님) 물론 마시멜로들도 타들어 갔지만 펠리컨을 쫓아내는 데는 성공하여 효과는 있었다.

 

 검은 사람들은 생각이 죽은 자들이거나 그 세계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선을 잡아와도 그 생선을 죽이는 것은 불가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적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왜가리가 자신과 다른 펠리컨이 죽었을 때 나미아비타불이라고 합장을 하는 장면을 보면 불교사상이 들어난다. 동시에 만약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 이러한 생각은 옳음과 그렇지 않음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들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정신은 죽어 옳고 그름, 삶과 죽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감히 다를 수 없고 다스릴 수도 없다. 동시에 히사코가 돌아오는 장면에서 그녀가 검은색으로 묘사가 되어 있어 그 떄는 이미 그녀가 다른 세계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었을 때 이다. 이를 통해 불교적 사상 속에서 삶과 죽음, 옳음과 그름, 그것의 판단 기준을 만들어주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통해 검은색인지 혹은 색이 들어있는지를 표현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애매한 존재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과는 반대인 흰 색의 와라와라가 생명과 탄생을 묘사한다면 펠리칸은 그들에게 죽음을 상징한다. 그 이상으로는 강력한 힘을 가진 히미가 존재한다. 이 세계 또한 양육 강식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세계로 약한 존재일수록 더욱 뭉치고 숫자가 많으며 이를 잡아먹거나 압도하는 존재들의 숫자는 그들보다 적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히미라는 아주 강력하지만 단 한 명 만인 존재가 서 있듯이 이 세계 또한 자연계를 빼 닮은 세상이다.

 

 

 

 어머니의 행방을 찾아가던 중 어느 외딴집에서 앵무새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는게 보인다. 앵무새도 어마어마하게 큰 모습이다. 게다가 이들은 숫자도 엄청나게 많다. 그들은 식인도 하지만 식인을 당하기 직전에 히메가 등장하여 마히토를 지켜준다. 히메는 마히토와 함께 불에서 불로 이동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간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히메가 바로 마히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 둘은 같이 나츠코를 구하러 성에 들어간다. 성에 들어가자 어마어마한 숫자의 앵무새들이 있었으며 이들의 눈을 피하여 나츠코를 찾아낸다. 하지만 나츠코는 마히토에게 꺼지라면서 그에게 부정하자 그 위에 있던 종이들이 마히토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마히토는 계속해서 나츠코를 부르던 도중 나츠코 엄마 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다시 밖의 세계로 이끌고 갈려고 한다. 그리고 나츠코 또한 다시 돌아가려고 하자 종이의 공격에 의해 둘은 정신을 잃는다. 이를 지켜보던 히메는 이 둘을 보내주라고 하지만 그녀 또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녀 또한 성의 공격에 의해 정신을 잃는다.

 

 히메가 가장 강한 인물로 들어나는 이유는 아마 그녀가 순수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 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에서 성이라는 장소는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장소이다. 마치 동영상의 시작부터 끝을 동시에 보는 것과 같다. 그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보았으며 이를 부정하기는 커녕 마히토와 만날 수 있는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긍정적이며 세계관 속에서 죽음을 가장 긍정적으로 마주하는 인물이다. 이로 인해 이 세계에서 그녀는 가장 강한 불의 힘을 다루는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츠코가 갑자기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계속해서 마히토에게 실망하는 얼굴을 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그를 걱정하고 쓰러질 정도로 그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히토는 계속해서 그녀에 대해 나츠코 이모, 나츠코 씨에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 아버지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점점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엄마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한 그가 히메가 순수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히토 또한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면서 나츠코를 새로운 엄마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이를 통해 마히토는 나츠코를 더이상 나츠코 씨가 아닌 나츠코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 이 말은 나츠코가 성에서 나와 다시 마히토와 그 세계로 돌아가게 해주는 중요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마히토가 다시 정신을 잃고 그 동안 앞에 그의 큰 할아버지, 노인이 등장한다. 초반에 등장한 노인은 마히토가 그 세계를 다니면서 자신이 만든 세계를 평가 및 이어주기를 원한다며 그에게 돌을 건낸다. 노인의 세계는 완벽해 보이지만 매일 아슬아슬하게 겨우겨우 넘어가는 위태로운 세계이다. 이런 세계를 좀 더 진실되고 안정적으로 이어줄 것으로 마히토에게 기대를 건다. 그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보면 사각,삼각 그리고 공 모양의 입체 모형들이 그냥 세워진 그 세계를 톡 건드리면서 다음 하루를 점쳐보면서 넘어간다. 그러자 마히토는 그 돌은 사람의 죽음을 증명하는 묘지의 돌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이를 부정하자 노인은 더욱 그러기에 그에게 그 세계를 이어주기를 원한다. 그러던 중 눈을 뜨자 앵무새들에게 붙잡힌 마히토는 왜가리의 덕분에 그곳에서 탈출하여 히메를 이용해서 그 세계를 정복하려는 앵무새를 쫓아간다. 그리고 쫓아가지만 앵무새의 방해로 그들을 놓치는 사이에 앵무새들은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노인은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마히토는 정신을 차린 히메와 재회하고 이 둘은 노인을 만나러 간다. 노인, 큰 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다음 세계를 이어주기를 바라지만 그는 스스로 낸 상처의 흉터를 보이면서 자신은 그렇게 진실된 사람이 아니라며 이를 거부한다. 그러던 중 앵무새 왕이 그들의 대화에 난입해 노인이 제안하였던 세계를 쌓는 돌을 자신의 마음대로 쌓아보지만 이는 이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앵무새 왕은 이를 참지 못하고 칼을 꺼내 들어 반으로 자르고 만다. 그리고 세계는 무너지기 시작하며 마히토와 왜가리, 나츠코와 그리고 키리코와 히메는 제각각의 세계선으로 다시 한번의 재회를 기대하면서 헤어진다. 왜가리도 마히토와 헤어지고 전쟁이 끝났다는 나레이션과 집을 나서는 마히토를 뒤로 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앵무새들은 탐욕을 상징하면서 그 왕은 노인에게 히메를 조건으로 그들이 그 세계에 권력을 잡기를 희망한다. 앵무새는 욕망과 번식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생태계를 망가트리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전투력이나 그들의 힘은 알지 못하지만 그 어떠한 존재들을 그들을 훼방하거나 제거하지 못하고 그들의 수만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토대로 보자면 그들은 영화상에서는 가장 강한 존재임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들의 수처럼 적절하지 못하는 욕심으로 분쟁을 보여주면 동시에 분노를 보여준다. 이는 파멸로 이어졌으며 그들이 꿈꾸던 희망을 욕망에 눈이 멀어 스스로 부수고 만다.

 

 

 

 마히토는 계속해서 여성들에 둘러싸여 계속해서 할아버지의 의지와 세계를 보고 성장한다. 처음으로 만난 여사공(할머니)를 통해서 삶과 정신이 죽은 자들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다음으로 만난 여성은 히미, 그의 친 어머니이다.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으면서 몇 번이고 목숨과 위기를 넘기게 해 준다. 이처럼 영화는 소년의 가장 개인적인 성장기를 그리고 있으며 몰래 가져온 돌의 파편 덕분에 소년의 환상적인 모험은 기억을 잃지 않고 이어간다. 물론 이 또한 언젠가 서서히 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마 가장 오래 그 기억을 이어가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영화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기에 보는 사람만큼 해석의 여지도 다양한 영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각각의 해석들을 모두 포함시킬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거대한 그릇으로 그려지고 있다. 누군가는 제국주의 시대의 대한 회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투영하여 그린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어느 해석을 가지고 영화를 끝내든 많은 관객들이 학교에서 보여주었던 지브리 영화들을 바탕으로 이 소년의 환상적인 모험을 함께 기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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