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을 넘은 영화 8/10
(이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영화는 굉장히 인상적인 면을 다수 보여준다. 따뜻하고 온순한 가족들이 밤에는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비명이 들리기도 하는 공간 바로 옆에 살고 있다는 면에서 영화는 지금까지 나온 여러 2차 세계 대전의 영화들과는 다른 면모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영화라는 매체는 크게 사건과 인물 혹은 이 둘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사건도 인물도 크게 조명하지 않는다. 그들이 조명하는 것은 바로 존,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에 나와있는 존, 이는 사람의 이름이 아닌 공간, 그리고 범위를 뜻하는 Zone을 칭한다. 단어 존은 인류가 만들어낸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 안의 실내 공간과 같은 물리적인 공간을 지칭하기도 하며 이와는 반대되는 외부의 공간을 칭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추상적인 공간 또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다수의 사람들이 팔 길이 만큼의 거리로 원 모양으로 서 있으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원 안의 부분을 ‘공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그 범위와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 존이라는 표식이 들어가 있는 영화인만큼 인물들이 들어가 있는 범위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인물들이 속하는 공간을 영화는 아주 천천히, 어떠한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미동 없이 그들을 관찰하는 듯이 파고든다. 그리고 외부에서 중심으로 빙글 빙글 돌아가면서 들어가는 회오리 모양으로 카메라는 점차 외부에서 내부로 침입하기 시작한다. 그런 내부 공간은 누가 보아도 따뜻하고 다정하다. 정원이 있으며 아이들과 강아지가 뛰어노는 보험광고 같은, 그리고 누구 하나 미간에 주름이 잡히지 않는 평화로운 가정이다. 이 가정이 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바로 옆에 있는 독일 장교의 집이라는 것 빼고는 말이다.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며 유태인 학살을 소재로 삼고 있는 작품들의 대다수는 유대인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여준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아들을 살리려고 하는 아버지를, <사울의 아들>은 자신의 아들의 시신을 찾는 이의 시선을 담는 등 대부분의 경우 유대인의 시선으로 영화를 접근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뒤틀어 오히려 독일 장교 가족의 따듯한 모노 드라마를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절대 독일 장교를 미화하거나 그가 유대인 학살을 앞두고 갈등하고 고민한다는 인간성에 대한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는 위의 명령에 지시를 따르며 자신의 가족에게는 따듯하고, 동료들에게는 인정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을 짓궂게 물어본다. ‘과연 악마의 삶이라고 해서 무언가 크게 다를까?’
영화는 계속해서 평화로운 루돌프 가족을 보여주지만 그들이 밤을 맞이하는 순간에 영화는 낮에 보여준 평화를 깨부순다. 저녁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과 그들의 시신이 불타 밤을 밝히거나 그들의 재가 근방의 마을에 날리는 모습. 수용소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식량을 주기 위해서 밤에 몰래 나가 사과와 같은 음식들을 그들이 일하는 장소에 숨겨놓는 등 밤이라는 시간대는 루돌프 가족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따뜻한 시간이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투쟁의 시간이다. 게다가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행동에 대해 어떠한 의구심이 없다는 것을 저녁시간대에 보여주기도 한다. 아들들이 유대인의 시신에서 나온 금 이빨을 보거나 헨젤과 그레텔 동화에서 마녀를 밀어 넣는 부분만 강조하여 읽은 등 그들은 낮도 저녁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인물 루돌프 회스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고 뒤를 돌아보는 장면이 있으며 바로 현대에서 아우슈비츠를 청소하는 이들을 보여준 후다. 그분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아우슈비츠 통로를 청소하고 거기서 희생되어진 사람들의 신발이 들어가 있는 유리창, 그들이 가져온 짐가방들과 소지품 등이 들어 있는 유리창을 닦는다. 그분들은 어떠한 대사도 하지 않지만 그들의 어떠한 대사보다도 쌓여 있는 희생자들의 유품들을 보면 어떠한 대사보다도 강렬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루돌프에게 시선을 옳기다. 그리고 더이상 아우슈비츠에 근무하지 않는 루돌프에게 시선을 옳겨도 그는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이 아닌 공간을 넘은 연출로 마지막까지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앞서 계속해서 언급한 존, 공간과 범위는 단순히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첫 발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리고 현대의 아우슈비츠를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아 하고 탄식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영화의 제목에 있는 ‘관심 있는 장소’ 는 바로 아우슈비츠를 칭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현미경과도 같이 아우슈비츠라는 공간을 지배하였던 인물을 탐구하고 관찰한다. 마치 신들이 인간을 관찰했다는 것처럼 영화는 이들을 멀리서 관찰한다. 나뭇잎이나 우리가 먹는 음식들을 현미경을 들여다 보면 아름다운 패턴 구조가 나오기도 하며 예상치 못한 생명체와 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과 같이 새롭고 놀라우면서 충격적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는 현대의, 그리고 앞으로의 영화를 위한 영화, <무비 오브 인터레스트>로 남겨질 것이다.
요약 3줄
1. 인물, 사건 그 이상의 시선
2. 차원을 넘나드는 공간 활용 범위가 크다
3. 영화를 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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