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있는 그들처럼 따듯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7/10
(이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뤽 베송 감독은 액션을 포함해 드라마, 멜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뛰어난 연출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감독에게 크게 기대한 점은 없었다고 하는게 필자의 의견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는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동시에 뛰어난 각본과 미장센 연출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요소들을, <행복한 라짜로>를 독특하며 어두운 스릴러로 연출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주인공 더글러스 먼로우가 여장의 모습에 수십 마리의 개들을 트럭에 실은 채 도주하던 중 경찰에 체포되어지는 장면부터 시작을 한다. 그리고 체포된 이후 심리상담사 에블린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그의 인생사를 뒤돌아 본다. 탄탄한 각본을 바탕으로 우리들은 그가 어떻게 다리를 절게 되었으며 왜 여장을 하였는지, 그리고 왜 수십 마리의 개들을 데리고 다니는지 등등 여러가지 궁금증들을 하나 하나 풀어 나아간다.
그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그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의 수 만큼 그에게는 엄청난 불행들이 다가왔다. 그는 종교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배신을 일삼는 형에 의해 철장에 오랜 시간 갇혀 지냈지만 아버지가 투견으로 키우려고 한 강아지들이 있어 따뜻하게, 그리고 외롭지 않게 살아남았다. 그 이후 자신이 사랑했던 이에 대한 너무나도 큰 기대감의 상실로 쓰러지지만 그때도 그 곁에서 그를 위로해준 건 강아지들이었다. 게다가 그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도 강아지들의 뛰어난 부의 재분배 실력으로 (도둑질)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겼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불행을 막지는 못했다.
필자에게 있어 놀라웠던 점은 주인공을 학대하고 폭력으로 다스린 인간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던 종교를 더글라스가 어떻게 계속해서 믿는 것이었는가 였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그가 과연 신(GOD)를 믿었는지 혹은 그 옆에 있던 개(DOG)를 믿었는지 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철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형이 신의 말씀데로(In the name of GOD)를 거꾸로 봤을 때 그에게 비친 개(DOG)를 그는 믿게 되었던 걸 수도 있다. 종교적인 면들도 등장하지만 맹신적인 종교의 믿음에 대해 비판적인 감독의 시선도 들어가 있다. 그리고 제목을 생각해 볼 때 제목의 도그맨에서 그가 믿는 것이 개(DOG)라고 한다면 그는 강아지들을 만남으로써 치유 받고 사람 그 이상의 인물이 되어지는 성인 혹은 신 그 자체를 표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앞서 <행복한 라짜로>를 끄집어 내었다.
영화는 종교적인 색체가 강한 동시에 프랑스 감독 답게 자유와 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더글라스가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도 그는 십자가에 박힌 예수처럼 양팔을 벌린 채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형은 종교에 깊이 심취해 있는 폭력주의자들이다. 가장 종교를 믿는 사람이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러니함 속에서 더글라스 또한 종교를 믿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형처럼 몇가지 문제들을 폭력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는 이를 강육양식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스스로를 합리화 한다. 이 점이 더글라스를 불행과 상실로 책임을 성실히 응한 사회에서의 자유 진영에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가 생계를 위해 강아지들을 통해 절도를 하는 행위를 스스로 부의 재분배 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이 부분에서는 약간 디테일이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가 계속해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점에서 그가 주장하는 부의 재분배를 마지못해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바깥 세계를 보지 못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 이후로도 사랑보다는 생존을 위해 모인 보육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거기서 싹을 틔운 사랑이 스스로 시들어버리면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절망은 커졌다. 게다가 그가 사랑한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와 일을 시작한 곳도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기 어려운 여장 남자들이 쇼를 하는 바였다. 이렇게 더글라스는 처음부터 그리고 그의 마지막까지 사회에서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세월을 보냈지만 이는 그 옆에 강아지들이 그에게 다가오고 그를 위로해 주었다.
무엇보다 그의 어머니만큼은 아버지의 학대에 이기지 못하고 집을 떠났지만 그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어머니와의 추억이었던 만큼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을 강아지들이 보존시켜 줌으로써 그는 옳은 방법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방법으로 그의 주위 사람들을 도와주고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마지막 에블린의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도와 주기 위해서 그녀에게 그의 최고의 개를 옆에 붙여주는 장면에서 사회에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그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해결 및 방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강아지처럼 누구보다도 다른 이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람들은 인간이 늑대를 길들였으며 이가 강아지로 변모하여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살펴보면 이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강아지와 늑대는 정신적으로 약간 다른 면이 있다. 바로 공감이라는 면모에서 다르다고 하며 늑대의 입장에서 강아지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걸로 비춰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정신병을 가진 강아지들이 인간에게 다가왔으며 인간이 길들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현대 사회에 강아지들이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온기는 이루어 말하지 못할 정도로 크고 따뜻하다. 그리고 영화에서 말하는 그들의 공감의 능력은 현대 사회에 있어 인간보다 더욱 공감하게 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옆에 와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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