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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웅 – 객관적인 The hero가 아닌 주관적인 A hero

영화

by 페이퍼무비 2023. 8. 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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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영웅은 애매한 선상에서 태어난다. 7/10

(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영화의 시작에서 보여지는 장면은 주인공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을 길게 테이크로 찍고 있는 것이다. 계단은 오르기 어려운 다시 말해 인물의 역경의 시작을 보여준다. 그리고 두번째로 계단을 오르는 장면은 자신이 주운 가방을 가져간 여인을 찾기 위해 그녀의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둘의 장면의 공통점은 장면 모두 주인공이 바른 길로 걸어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옳은 일을 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당연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어렵고 고된 일이라고도 있다. 그리고 계단은 주인공의 딜레마의 역경을 계단이라는 사물을 올라가는 것으로 표현된다.

 

딜레마는 이야기에서 자신은 어떠한지 라는 원초적 교훈과 질문을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으며 그것은 영화의 주제와 연관되어있다. 영화의 시발점에서 시작하는 의문에서 원초적인 질문, 그리고 점점 딜레마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사채, 거짓말, 결혼 등등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선택의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은 도덕적 충동에 사로잡히며 선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만 답들이 하나같이 거짓말로 이어지며 처음부터 시작한 거짓말은 점차 눈덩이처럼, 스노우볼처럼 점차 거져가며 그의 권한을 이탈하는 지경에 빠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인공의 희망은 영화 전체에 이르러서 한번, 마지막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만 발휘된다. 그때까지는 자신의 누나, 매형, 부인, 사람들 단체들의 기대를 이루어지기 위해, 희망하는 , 그리고 원하는 이루어지기 위해서만 거짓말을 남발한다. 그리고 조금은 야속하게도 그들이 원하는 거짓말을 정말 작은 거짓말들이다. 여자친구는 결혼을 원하고, 교도소에서는 자신들의 시설에서 죄수들이 개과천선한다는 미담을 원한다. 작은 기대가 모여 처음 시발점에서 시작한 거짓말에 점점 살을 붙여 나아가 결국에는 그게 주인공의 인생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어떻게 보면 순수하다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바보라고 수도 있을것이다. 만약 그의 거짓말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면 그것은 순수하다는 결과를 내놓을 것이며 그의 선택이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킨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손가락질 것이다.

 

 그의 선택들에서 옳고 그름, 그것을 구별하기 애매하다. 주인공은 크게 망설임이나 고뇌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순히 그가 여러사람한테 육체적으로 욕을 먹는 장면이 반복되는 정도이다. 이것을 선이라고 판단한다면 멍청한 것은 과연 선한것인가. 그리고 그가 만약 선하다고 판단한다면 그에게 적용되는 윤리적 기준은 어떠한가. 그가 돈이 없어 감옥에 들어가 자신의 형벌을 채우고 잠깐 나온 사람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가 죄를 저지른 악인이라고는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감옥에 들어가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 그들의 시선에 감옥에 들어갔다는 자체가 죄인으로 적용받을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그는 악인이 선행을 행한것인가 혹은 선인이 악행을 저지르려고 하다가 감옥이라는 장소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한번 개와천선한다는 그런 멋진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인가. 윤리적 기준은 상대적이다. 누가 바라보고 누가 행하고 무엇보다 그의 말하는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따라 기준은 계속해서 요동칠 것이다.

 

  영화가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바램을 이어가려고 하는지는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을 보면 있다. 이란이라는 국가와 지역은 개인의 명예보다는 가족의 명예, 그리고 가문의 평판이 너무나도 중요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영화가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sns 활용이다. 사람들이 sns에서 자신들의 개인적 의문과 생각을 펼침으로써 이를 방송국이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같이 동조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영화는 개인의 의견이 집단과 사상을 가볍게 붕괴시킬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그에 대한 강한 설득력이 필요하지만 주인공이 거짓말을 했다는 점에서부터 그에게 편들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그를 점점 휘몰아친다.

 

영화는 완전한 선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왜냐면 사람들은 완벽한 선인의 이야기보다 악인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고 보게된다. 왜냐면 사람들의 욕망을 좀더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운 인물이 악인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인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에 가깝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자신을 타이르고 혼내지만 실제로 우리에 가까운 모습은 악인에 가깝다. 어떤 영웅의 주인공 또한 선인에 가깝기에 우리들은 그를 보면서 크게 재미있다고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면 그의 행동이 너무나도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만약 주인공을 선인으로 배치할 경우 우리에게는 좋은 악역이 필요하다. 물론 그에 반하는 좋은 예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tenet 좋은 예이다. Tenet에서 주인공은 처음부터 자신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애국심이 강하며 동료를 챙기며 자신의 임무를 위해 그리고 보안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완벽은 선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크리스토퍼 놀란은 모든 임무들을 실패한다는 스토리로 그의 선함을 배제하고 압도한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주인공이 완벽한 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되는 실패는 사실 마지막의 완벽한 성공을 위함임을 깨달고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렇게 자신이 선인인지 혹은 악인인지 스스로도 정체성을 잃은 인물에게 주위의 인물들의 작은 기대와 거짓말들은 스스로의 인격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렇게 우리들은 딜레마에 빠지기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주관적인 선과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윤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말의 뜻은 어떻게 보면 나는 생각하지 않으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것과도 마찬가지이며 스스로가 아닌 다른 이가 자신을 정의할 때도 자신의 윤리와 정의가 세워지지 않는 경우에 다른 이는 자신을 존재하지 않는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선악의 구분은 자신의 철학에서 탄생한다. 이를 위한 사고를 가질 필요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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