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이 눈치 보려다 생긴 불상사 5/10
(이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개봉한 날은 추석 시작 바로 전날인 금요일로 누가 보아도 추석 명절을 노리고 개봉하였다. 이전까지는 코미디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 영화 혹은 형사 영화들이 우수수 떨어졌지만 올해는 [베테랑 2]만 개봉하였다. 이것이 과연 영화관을 찾지 않는 관객들의 탓일까.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지 않아서 영화 시장이 작아진 것일까. 혹은 영화의 질이 안 좋아져서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지 않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의견이 나뉘겠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관객의 문제가 아닌 영화관의 문제인 것이 분명하다. 영화는 크게 두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추석이라는 시즌에 개봉하였지만 눈치 없이 어둡고 무거운 톤으로 영화를 이끌어 갔다는 점. 그리고 두번째는 각본에 어떠한 정성도 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작품들이 무조건 가족 영화이거나 코미디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개봉하여 더욱 많은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작사와 투자자들은 어떠한 모험도 싫어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액션, 형사, 코미디를 선택하였다. 하지만 여기서의 문제는 영화의 톤을 너무나도 무겁게 잡고 간다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는 마치 옛날 영화를 보는 듯한 편집과 액션을 넣었으며 톤을 가볍게 잡고 가려고 한다. 그리고 점점 무겁게 자리를 잡으려고 하지만 이 무게를 너무 많이 잡았다. 게다가 여기서 과거에 실제로 발생한 한가지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게 아닌 이 사건 저 사건 어중떠중 가져다가 붙이기 바쁘다. 이때문에 관객들은 더더욱 압박을 느끼고 영화 관람에 부담을 느낀다.
게다가 어중이 떠중이 악역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느라 사나울 뿐더러 주인공의 가족까지 끌어 들이면서 혼란은 더욱 가증된다. 아들의 학교 폭력, 이웃의 다문화 가정의 불화, 가짜 뉴스, 출소한 살인자의 이야기에 새로 생긴 살인자. 심지어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해치’라는 인물은 등장하지도 않은 것이다. 영화가 무엇을 중심으로 잡고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시점에서 영화는 무게를 잃는다. 부족한 그릇에 이야기를 더 담으려고 하는 욕심은 오만하고 책임감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는 영화의 질을 떨어트리고 책임은 관객들이 상승한 영화 티켓 값으로 지불하여야 하였다.
두번째 문제는 정성 없는 각본이다. [파묘]가 개봉하였을 때 출연 배우는 물론 모두가 천만 돌파를 예상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파묘]의 각본에 정성과 깊이가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베테랑2]는 누가 보아도 얇고 과거 작품들의 장점이라는 살점을 버리고 남은 단점을 모아 모아 차린 추석 제삿상이 되어버렸다. 기존에 관객들이 알고 있는 형사 장르에 새로움을 얹기란 항상 어려운 일이자만 이가 바로 영화 제작사와 창작자들이 해내야 할 책무다. 무엇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수준의 각본을 사전에 확인 하지 않은 제작사의 문제도 크지만 [베테랑]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가장 큰 착오라고 생각한다. 전작 [베테랑]과는 색이 다르고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다는 점에서 전작의 이름을 버리고 차라리 새롭게 나아갔다면 관객들의 실망도 적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부담을 느끼고 실망의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10년전 개봉하였던 작품을 다시 한번 꺼내 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 중에 [정의란 무엇인가]가 등장한다. 이는 후반에 [다크나이트]의 한 장면처럼 등장하는 어느 쪽을 구할 것인가, 선택할 것인가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실제로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철도 이야기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한사람으로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상황을 바꾸어 똑같이 한사람의 희생으로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선택이 바뀐다면 왜 바뀌는 것인가. 책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는 어째서 일관된 선택을 하지 못하는가 에 대해 물어보는 책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전에 캐릭터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 서도철의 정의는 ‘죄가 어떻게 되었건 살인은 나쁜 것’ 이고 해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다. 서도철은 형사이자 경찰이라는 직업 특성 상 아무리 큰 죄가 있어도 그 사람을 체포하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직업인 형사, 그리고 그들이 건배를 할 때 언급하는 ‘국민 안전’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해치의 경우 피해자보다도 가해자를 위한 듯이 보여지는 낮은 처벌에 불만이 많은 국민들을 위해, 그리고 본인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피해자가 죽은 방식과 동일하거나 동일하게 보이게끔 처벌을 가한다. 여기서 더 깊에 들어갈 수 있는 철학적인 질문은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감정적인 다수주의는 옳은가’등등 있지만 각본은 문제만 대충 던지고 화려한 액션으로 눈속임을 하는데 바쁘다.
문제를 많이 던지지만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분명 문제들을 나누어서 정리한 다음 하나의 거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필자가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점이다. 액션은 한국 영화 중에서도 최상위에 점할 정도로 완성도와 타격감, 그리고 편집점도 훌륭하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달 방식의 편집이 아쉬움이 남는다. 심지어 해치의 정체를 들어내는 것이 초반이 아니라 중반이었다면, 그리고 그 장면이 ‘안녕’하고 하는 그 장면이었다면 얼마나 좋은 반전, 그리고 전개가 되었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영화에서 끌어온 구도와 장면들을 따라하는게 아닌 본인의 색으로 편집하여 보여 주었어야 진정한 ‘한국 영화’였을 것이다. 만약 이번 작품이 500만을 넘기지 못한다면 더이상 추석 특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추석 특수를 노리기 보다는 평소에 잘 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요약 3줄
1. 추석 특수를 노린 노골적인 제목과 배우들
2. 얇은 철학과 이를 살리지 못한 각본
3. 그래도 액션 하나만은 최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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