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으로 남은 만남의 교차 6/10
(이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3명의 인물들이 어떤 관계인지 추측하는 커플의 시선으로 시작되어진다. 커플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단순히 목소리로만 2명의 아시아 남녀와 백인 남자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관계를 오빠와 여동생, 혹은 부부와 가이드 등으로 추측하면서 관객들 또한 그들의 관계에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는 24년전 한국을 보여주면서 인물들을 천천히 보여주기 시작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고 하면 단순하며 단조롭하고 하면 단조롭다. 사실 로맨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들의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의심과 호기심 그리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밀고 당기기가 매력 중 하나이다. 혹은 그들의 헤어짐과 그 이후의 재회나 최근에 들어서 유행하는 서로가 사랑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눈물나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 등이다. 이 영화 또한 스토리로 보자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애당초 사랑 이야기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넘어가서 더 이상 새롭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를 보완하는 두가지의 강점이 있다면 바로 이들을 감싸는 문화적 교류와 충돌 그리고 비주얼일 것이다.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 노라는 어린 시절 가족의 이민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 그녀는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후에는 그녀가 훌륭하게 성장하여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며 현대 사회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성공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캐나다, 미국으로 넘어와 한국어 자판을 모르기에 서툰 타이핑을 보여주거나 그녀의 약간 뭉개진 발음 등이 그녀가 어느 나라 사람에 더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더 이상 한국이라는 장소와 나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미국-한국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다가온 그녀의 첫 사랑, 남자 주인공 정해성은 한국에서 자라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누가 봐도 한국-한국인처럼 성장하였다. 군대를 다녀와 공대를 가서 중국어를 배우며 결혼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며 결혼을 주저하는 현대의 많은 한국인들을 대표하듯이 보여준다. 그러한 그들이 다시 만남으로써 느끼는 애틋함에 시간이라는 벽을 만든다. 그들은 서로를 찾았으며 서로를 그리워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벽은 점점 두꺼워지고 촉박하다고 생각한 시간이 이들의 만남에 더욱 방해를 가한다. 그 와중에 노라는 결혼을 했으며 남자는 노라를 잊지 못하고 뉴욕에 와서 그녀와 직접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부에서 마치 <500일의 써머>의 썸머 핀을 향한 비판과 같이 노라가 나쁜놈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본인의 업적과 성취를 위해 만나기를 거부하였음에도 글을 쓰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서 그녀와 남편의 대화에서 서로가 싱글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돈을 아끼기 위해 동거를 하고 이민권을 위해 일찍 결혼을 했다고 약간의 부가 설명을 한다. 이에 납득은 할 수 있겠지만 이성과 감정이 나뉘어 있는 만큼 그녀가 나쁜 사람으로 비춰질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렇지만 그런 그녀도 사실 마지막의 울음에서 그녀에게 어떻게 보면 많은 선택지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의 스토리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화면에 비춰지는 장면들은 하나 하나가 엽서, 포스터로 나와서 손색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아름답게 촬영이 되었다. 장면이 마치 사진과 같다고 느껴진다면 이는 굉장한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진이란 누가 보아도 무엇을 목적으로 찍었는지, 그리고 누가 대상으로 찍혔는지 단숨에 파악할 수 있다. 인물이나 대상이 중심이 아닌 좌우로 치우쳐져 있어도 좋은 사진은 이들을 강조하기 위해 뒤의 초점을 내리거나 날림으로써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좋은 사진과 같은 영화의 화면 덕분에 우리들은 적은 대사로도 그들의 감정 상태와 그들의 관계 등을 바로 그리고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해준다.
좋은 비주얼과 안정적인 스토리이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들의 대사다. 제작사 A24와 CJ가 같이 협업하여 제작한 영화이지만 아마 A24만 대사를 확인한 듯한 애매한 한국어 대사들이 다수 등장한다. 마치 해외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어리숙한 한국어 대사들이 등장하여 몰입이 깨지기도 한다. 노라의 경우 한국어 자판도 써 본적 없으며 계속 해외에 있었던 만큼 한국어가 어리숙한 것은 어느정도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군대까지 다녀왔으며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남자 주인공의 한국어 대사에서 번역되어진 듯한 대사들이 많아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다행히 이를 보완하기 위한 아름다운 비주얼로 감추는 것이 가능하였다.
외국 영화이지만 한국 특유의 단어 ‘인연’이라는 것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 나아갔다는 점이 흥미로운 영화다. 아마 이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24년, 12년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아갔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스토리적으로 훌륭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단지 안정적인 선택을 하였을 뿐 우리들이 한번쯤 보았을 법한, 혹은 현실에서도 들어보았을 법 할 만 이야기이지만 마치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혹은 인스타에 들어가) 떠올렸을 듯한 아름다운 사진과 비주얼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남지는 못하였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3줄 요약
1. 안정적인 로맨스 장르 이야기
2. 갬성 인스타 사진 같은 아름다운 비주얼
3. 그렁데 한쿸어 돼사가 조큼 이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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