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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파트 2 (주저리 주저리) – 우리의 주인공 폴 찾아 삼만리

영화

by 페이퍼무비 2024. 2. 2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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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파트 1과 다르게 파트 2가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생기는 이유중 하나는 영화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영화이건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있어 인물 혹은 사건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파트 1에서 그 중심은 결코 폴 아트레이데스였다. 각종 사건들이 발발하면서 그에게 영향을 끼쳤을 뿐이며 이를 담아내는 시선이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였을 뿐 그가 영화를 이끌고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그는 여러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성장을 하는 캐릭터였다. 초반에 어머니에게서 베네 게세리트의 훈련을 받는 장면이나 거니 할렉에게 무술 훈련을 받는 장면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지혜를 물려 받는 모든 장면들이 그가 지식과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하는 장면들이다.

 

 파트 1에서 그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에서 사막으로 뒤덮인 아라키스 행성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예지력에 의한 지식도 있지만 그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이를 사전에 공부를 하는 장면들에서 그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포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이 사전지식들과 경험들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몰락 이후 그가 사막에서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치 <아라비아 로렌스>의 주인공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처럼 사막을 이해하려는, 혹은 <프로메테우스>에서 <아라비아 로렌스>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 데이빗 처럼 그는 다른 문화와 본인을 융합 시킴으로써 성장한다.

 

 파트 1은 세계관을 설명하는 동시에 주인공 폴의 성장을 같이 진행함으로써 관객들 또한 폴과 같이 세계관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와 같이 성장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처럼 함께 성장하는 캐릭터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그의 서사에 공감을 할 수 있으며 문제는 파트 2로 넘어오면서 이렇게 같이 폴을 또다시 성장시킬 수 있는 캐릭터들이 더이상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폴은 2부에 와서도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절대적인 예지 능력을 지닌 퀴사츠 해더락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직 먼 길이 남은 상태였다. 그런 그의 옆에서 그를 육체적으로 성장시켜줄 수 있는, 사막에서 살아남는 프레맨으로 거듭나게 도와주는 인물들은 다수 있었다.

 

 남부 출신의 프레맨 스틸가는 그의 옆에서 그를 지지하고 지켜주며 프레맨의 마지막 실험인 모래벌레를 타는 기술까지 그에게 알려준다. 그의 육체적 그리고 사막의 지식을 다방면으로 알려주지만 파트 1에서의 스승들처럼 큰 지지가 되지는 못한다. 왜냐면 그는 프레맨 중에서도 가장 깊이 종교를 믿고 있는 인물로 폴이 프레맨들을 녹색 땅으로 이끌어 줄 메시아라고 깊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성장을 시켜주어도 그의 정신이 일방적으로 종교에 깊이 파묻혀 있으면 그를 좋은 스승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 다음으로 챠니 카인즈의 경우는 폴이 사랑하는 연인으로 그녀는 스틸가와는 반대로 폴이 메시아가 아니며 폴 또한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챠니는 폴이 퀴사츠 해더락으로의 진화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할 뿐 그의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만약 이들의 강한 충돌이 있었다면 폴은 그 사이에서 고뇌를 하면서 관객들은 폴에 몰입을 해 영화에 집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틸가는 폴이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모든것이 예언이라고 믿으며 챠니의 경우 그 믿음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을 할 뿐 그 이상의 깊은 충돌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는 이미 대모로 각성을 하며 심지어 그녀가 임신한 아이, 폴의 여동생까지 각성하여 모녀끼리 소통을 하면서 어떻게든 폴을 퀴사츠 해더락으로 각성시키기 위해 베네 게서리트가 퍼트린 믿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종교를 설파하기 바쁘다. 이처럼 스틸가의 일방적인 믿음과 이를 부정하는 챠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폴을 중심에 붙잡아 줄 캐릭터의 소실로 인해 관객들 또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갈팡질팡한다.

 

 폴의 각성 장면과 그 이후 그가 퀴사츠 해더락이 된 순간에도 관객들은 어리둥절 할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폴 만큼 깊은 고민과 상황에 놓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옆에 있는 사람은 이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는 그의 머릿속에서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그의 고민을 창의적인 연출로 보여주거나 그가 상대하고 있는 상황과 적을 보여줌으로써 그가 대면하고 있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보여주어야 관객들은 보다 쉽게 그 인물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파트 2에 나오는 상황, 그리고 적들은 파트 1에 비해 규모는 커졌을 수는 있지만 그 크기만 커졌을 뿐 그 상황에 대한 압박감이나 위압감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파트 1에서는 거대한 모래언덕이었다면 파트 2에 넘어오면서 안정적인 사막의 여러개의 낮은 언덕으로 바뀐 느낌이 든다.

 

 파트 2에서의 문제는 바로 인물로 중심을 잡지도, 사건들로 중심을 잡지도 못하였다는 점이다. 인물들은 제각각의 개인 사정으로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하며 폴 또한 중심에서 위태롭게 서 있다. 폴이 퀴사츠 해더락으로 각성해야 하는지 혹은 이를 부정해야 하는지의 사건으로 가기에는 인물들의 충돌 또한 부족하다. 혹은 가문끼리의 싸움이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가문의 위압감과 무게감은 갑자기 바람이 빠져버려 폴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가 싱겁게 느껴지기도 하다. 물론 폴이 퀴사츠 해더락으로 각성함으로써 모든 미래 중 최고의 미래를 선택해 앞으로 그가 상대하는 모든 인물들과 가문들을 압도적으로 무찌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출 또한 바람이 빠져버린다면 관객들 또한 재미에서 바람이 빠질 수 밖에 없다. 파트 2에서 이야기의 확장을 위한 발판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위해 희생한 부분들이 커 필자에게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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