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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골드만 케이스 - 그래서 이걸 영화로 만든 이유가 뭘까?

영화

by 페이퍼무비 2023. 11. 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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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주관적인 기억들로 만들어지는 현란한 카메라 속 연극 7/10

 

 

(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화면의 비율이 11 화면으로 인물에 굉장히 초점이 집중 되어있다. 이는 굉장히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영리한 선택액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이 영화가 진행이 되는 공간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마치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한명씩 자신이 본 것을 서술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라쇼몽>과 같다. 하지만 <라쇼몽>과는 다른 점은 자신이 본 것을 장면으로 보여주는것이 아닌 진술하고 있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인물의 표정에 집중을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극대화된 인물이 이 영화의 주인공 피에르 골드만이다.

 

 

 

 피에르 골드만은 70년대 좌파 운동가에서 점차 범죄자로 변질된 사람이다. 그는 2명의 약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그 당시 많은 언론과 사람들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굉장히 뻔뻔하면서 기만, 그리고 오만한 인물이다. 그는 처음 나오는 장면부터 변호사들에게 자신은 무죄이므로 당신들은 필요가 없다며 그들을 무시한다. 동시에 재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은 결백하다고는 몇 번이나 소리치는 인물이다. 그의 뻔뻔함은 자신은 결백하기에 증인을 부르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게다가 그의 논리도 참으로 뻔뻔하다. 자신은 결백하기에 결백하다. 마치 자신은 아직 유죄가 내려지지 않았으니 무죄이다. 그러므로 무죄이다 라는 논리로 밀고 가아가지만 사람들은 그를 더더욱 지지하고 그의 행동과 발언에 환호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증인 그리고 피고인들을 내세운다. 자신의 아들은 착하다는 피고인의 아버지, 사망한 약사의 부인, 증인이자 어떠한 증거나 단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찰(경관)의 계속되는 증언. 그리고 엉망진창 미용사의 설명 등등 여러 명의 시선이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중복되지만 동시에 개별적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건이 일어 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탓에 그 일을 메모하거나 특정 부분만 뚜렷하게 기억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무엇보다 사건이 일어나고 재판이 열리기 까지 몇 년이라는 세월이 이미 지난 탓에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에 혼선을 겪는다. 도입부부터 그리고 결말까지 연극과 영화 그 사이를 줄다리기는 다니면서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법정은 영화에서 많은 경우에서 하이라이트의 장면에서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이 장소는 반전 혹은 희열이 느껴지게 하는 공간이며 이 공간에서 계속해서 텐션을 놓치지 않고 배우들의 액션과 그리고 그에 의한 리액션을 이끌고 간다는 것은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어지는 일이다. 그 일례로 카메라로 거리감을 통해서 인물의 그리고 인물 간의 미장센을 잘 끌어내는 기술이 아주 뛰어나다. 이렇게 배우들의 액션과 리액션이 거친 파도와 같이 계속해서 부딪힌다.

 

 

 

 연극과 영화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여도 서로에게는 없는 부분을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연극 자체에 대한 흥미를 가진 사람들도 많이 없을 뿐더러 연극 극단이 설 수 있는 공간 또한 굉장히 작다. 아무리 한국이 영화에 대한 기술이 늘었다고 하더라로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어딘가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아마 연극이라는 매체가 채워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이 영화는 답해 주었다. 영화를 사랑하면 연극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영화의 조상은 연극이다. 그리고 조상님의 지혜에서는 항상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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