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어진 모성애가 부활시킨 어린 프랑켄슈타인 8/10
(이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산부인과 간호사 세실에게는 여섯 살의 어린 딸 릴라와 함께 생활한다. 너무나도 가까운 두 모녀 사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이 딸에게 세균 감연으로 죽고 만다. 어머니는 단순히 감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아이를 떠나 보내게 된다. 그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세실은 각종 부서를 쑤시지만 찾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죽음을 치료하려고 하는 병리학 의사 로즈가 그녀의 체질과 딱 맞는 시체가 바로 릴라였기 때문에 그녀의 시체를 빼돌려 실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실은 로즈를 찾게 되고 그 둘은 합심하여 릴라의 죽음을 치료하기 시작한다.
가장 인상적인 첫 장면은 로즈가 죽음을 치료하기 위해 다른이의 성욕을 대리 처리해줄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으며 목적이 뚜렷하다. 그러한 그녀가 세상에 그녀의 작업물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되어지고 법적으로 제제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제재가 없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죽음에 가까운, 그리고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의사가 될 것이었다. 사실 로즈의 모습을 보면서 저 정도면 단순히 자신의 실험을 위해 희생하는 또 한 명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절대 출산이 목적이 아니며, 그녀에게 있어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창조 능력이 아닌 기존의 창조된 그리고 파괴된 것을 고치는 것이 목적인 인물이다. 심지어 본인을 임신시켜 혈청까지 만들어서 줄 정도면 엄청난 희생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골수의 뼈까지 빼서 나눠준다는 것은 가희 충격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로즈라고 하더라도 영화는 절대로 감정 이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중간에 충격적인 장면은 그 의사가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서 실험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죽음이라는 질병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 하나로 관객들은 지금까지 의사에게 가지고 있었던 그녀의 희생을 다시 보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이 어쩌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할 만큼 영화는 뭔가 디테일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물론 필자는 1도 모르는 이야기였기에 그냥 끄덕끄덕 하면서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행위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았었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자 그들은 점차 다른 이들에게 해를 가해가면서까지 딸의 죽음을 고칠려고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생각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아이란 무슨 존재이며 자녀 자식은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존재인가이다. 로자와 세실이 가지고 있는 죽은자를 그대로 보내지 못하는 제 각각의 삐뚤어진 모성애도 우리는 모성애라고 할 수 있는가.
실험 장면에서도 상당히 재미있게 연상되는 실험들이 몇 개 있다. 그건 바로 돼지에게 음식을 주면서 벨을 울리는데 이는 아마 ‘파블로프의 개’에서 본 따서 온 장면, 실험일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은 (동물학대로도 유명한) 개에게 먹이를 줄 때 벨을 울려 세뇌시키고 나중에는 먹이를 주지 않고 벨만 울려도 침을 흘린다는 그 실험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딸 릴라가 죽음에서 깨어나서 보여주는 행동들이다. 실험 중에 홍수가 일어나 실험에 사용된 강아지들이 강에 휩쓸려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온순했던 강아지는 공격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이었던 강아지들은 온순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통해 갑작스러운 충격적인 사건으로 성격이나 인격이 정 반대가 된다는 결론을 내릴 실험이다. 어떻게 보면 다시 살아난 아이의 성격이 그렇게 바뀐 것은 다시 살아났다는 충격에 의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성격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무엇보다 새 생명인 동시에 부활이라고 할 수 도 있지만 인간이 다시 부활하였는데 기억이 없으며 성격까지 바뀌어 이전의 사람의 모습은 조금도 볼 수 없다면 그것은 과연 이전 인간의 모습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처음과 중간에 같은 사건을 보여준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첫 장면에서는 아이의 출산을 보여주지만 중간에서는 이가 두 사람의 생명에 대한 탐욕에 의해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기점으로 영화는 점점 간호사 어머니가 미쳐가며 동시에 집착의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처음의 냉정함과 열정도 정도와 상황이 반대가 되어 각자 물어보던 질문도 반대가 되어 물어보게 된다. 그리고 이를 노랑과 오렌지의 빛의 미장센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영화는 제목에 나오는 두가지 요소의 관계를 깊이 들어낸다. 누군가의 탄생으로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누군가의 탄생이 재탄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어나는 아이의 시점으로 두 어머니를 비추면서 영화는 끝을 낸다. 상당히 충격적인 동시에 필자가 아주 만족스러운 결말이다. 열린 결말이지만 그 끝은 여러 사람의 파멸을 끌고 올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이 둘의 행동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렇게 장르적으로 만족스러운 동시에 깊은 메세지들도 품고 있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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