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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일 - 대런 에러노프스키의 한 사람을 비추는 따뜻한 시선

영화

by 페이퍼무비 2023. 9. 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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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희생은 과연 깊은 죄인을 용서하는가 - 7/10

 

( 글은 영화 전체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대런 에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특징은 인간 심리를 가장 깊은곳까지, 그것도 지독하다라고 생각할 만큼 깊이 파고든다. 블랙 스완에서는 완벽을 위해 자신을 파괴해가며 작품을 완성해 가는 인물의 심리를 들여다 본다. 그리고 레슬러도 명의 아버지이지만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꿈을 만들어가는 (비록 피가 튀면서 잔혹하지만) 인물로 비춰진다. 작품은 자신이 지금까지 후회와 참회를 몇번이고 반복해 나아가면서 변화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주인공 찰리는 자신의 동성 연인이 자살을 하면서 자신까지 영향을 끼치고 영향으로 폭식증을 겪으면서 결국에는 스스로 자신의 다리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무게가 늘어나 스스로를 제어할 없게 되었다. 그러한 도중에 찾아온 가짜 목사는 그에게 종교를 믿으라고 찾아오지만 그는 그의 연인을 죽였던 종교이자 종파를 차분하게 내쫓는다. 그리고 그의 딸에게는 항상 미안해하면서 자신을 가지고 놀림거리라고 하여도 그것을 악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를 찾아오는 간호사 친구에게는 항상 미안해 하지만 그의 식탐이라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의 신파를 팔아먹으면서 그녀를 이용한다. 물론 그녀를 굉장히 아끼는 마음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를 스스로 제어할 정도는 아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그의 아파트 방이라는 공간에만 머물러 있다. 물론 그의 신체적 제한으로 인해 외출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다른 캐릭터들을 이용하여 밖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공간에서 벗어날 있다. 하지만 야외라고 하여도 그의 아파트 밖이 가장 가까운 야외 공간이다. 이렇듯 영화는 찰리가 있는 공간을 마치 찰리가 머물러 있는 공간이 아닌 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공간인 것처럼 비춘다.

 

여기서 필자가 떠오른 것이 바로 단테의 신곡에서 가장 유명한 <지옥>이다. 그렇다! 그는 지옥이라는 그의 방에서 스스로를 계속해서 참회하고 있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보면 지옥에도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 찰리가 자신의 연인의 죽음에 상처를 받고 세상과는 떨어진 아파트를 1층인 변옥(림보)라고 있다. 관객들은 그의 등장 모습부터 놀라지 않을 없다.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는 데다가 매번 간호사가 와서 간호를 해야 하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체형의 사람은 놀랍다. 공간은 절대 찰리를 고문하거나 괴롭히거나 어디처럼 땅에 파묻히거나 하지 않는다. 공간은 찰리를 헤치지 않지만 변옥의 특징은 신을 만날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에서 그는 스스로를 혐오하는 동시에 그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베푼다.

 

그리고 그의 뒷모습 이후 등장하는 장면은 그가 동성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가 포르노를 보는 장면은 그가 2층인 음욕의 지옥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있다. 그가 동성애 포르노를 본다는 것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동성애가 현대 사회에서 더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 받아지고 있지만 종교적인 시선으로 보면 동성애라는 것은 하나의 죄로 취급된다. 그렇게 그는 2단계의 성욕 단계에서 또다른 죄를 저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에서도 찰리가 가장 깊이 빠져 있어 보이는 단계는 3단계인 식욕에 있다. 그는 자신이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간호사 리즈에게도 구절을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을 우걱우걱 입에 넣는다. 그리고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는 순간에도 온갖 칼로리 높은 간식들을 입에 우걱우걱 쑤셔 넣는다. 그리고 식욕은 점점 불어나 결국 보조장치 없이는 스스로 걷기는 커녕 일어서는 조차도 힘들게 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그의 지옥의 단계는 점점 내려간다. 4 탐욕에서는 그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자 제자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포기하고 새로운 사랑을 탐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식 결혼에서 서로의 서약을 지키지 못하고 새로운 사랑, 심지어 동성애를 쫓아 나아간 것은 그의 탐욕에 대한 죄를 보여준다. 그리고 5층의 분노는 세상에 대한 분노이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욕설까지 첨부한 메일로 수필 제대로 써라!’라고 말하는 장면들과 분노로 인해 과자들을 입에 우걱우걱 쑤셔 넣는 장면이다. 그리고 6층의 이단 지옥과 7층의 폭력 지옥 그리고 8층의 사기 지옥 모두 그에게는 해당이 된다. 하지만 중에서도 가장 깊은 , 바로 배신 지옥에 그는 너무나도 깊이 빠져 있다. 이는 그녀의 딸과의 관계에서도 보이며 그의 부인 메리에게도 죄가 확산되었다. 엘리는 찰리의 죄로 인해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하고 떠돌 밖에 없는 영혼이며 메리는 주위에 자신의 남편과 이혼 사유가 남편이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과 주위에 시선으로부터 계속해서 창피와 수치심에 빠져야 했다. 찰리는 이들의 죄까지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찰리는 단테의 지옥에 나오는 모든 단계의 지옥을 계속해서 돌아가면서 겪고 있다.

 

이렇게 지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그가 마지막에 구원받고 올라가는 장면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그것은 기독교에서 가장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희생덕분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돈을 쓰지 않고 그녀의 엘리를 위해 돈을 모으고 그가 죽으면 모든 돈을 엘리를 위해 남긴다고 발언하였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괴물이라며 사진을 올리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의 딸을 위해 계속해서 희생했음에도 그는 진작에 본인의 희생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사람들은 흔히 사랑이라고 수도 있지만 기독교에서 예수라는 인물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사람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희생이 있어 찰리는 자신의 지옥에서 벗어나 신조차 마주할 없었던 지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엘리에게 헌신하는 아버지처럼 비춰질지라도 찰리의 희생 의해, 사랑에 의해 혜택을 얻게 되는 엘리에게는 희생이라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엘리가 본인이 책의 후기를 읽음으로 그녀가 찰리의 희생 의해 앞으로 어두운 미래가 아닌 새로운 미래를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찰리는 본인의 희생 인정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찰리는 지금까지 본인이 벗어날 없었던 방이라는 공간에서 누구보다도 멀리 멀어지는 것이 가능하게 것이다. 혼자서 걷지도 못하였던 사람이 이제는 누구보다도 높이 올라가게 해준 사랑과 용서를 영화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혹시 몰라 필자는 지금까지 어떠한 종교에도 믿음을 가지지 않은 무신교임을 밝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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