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블랙’ 코미디 7/10

(이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영화는 한국에서 상영을 하기 전부터 상당한 평들로 가득하였다. 누군가는 가장 대중 친화적인 박찬욱 작품이라고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산만하다 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덕분에 필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었으며 이후 평이 갈리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감독이 가진 원작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만들어진 만큼 담담하게 그려져 있어 관객들이 일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담백함에 사람들은 박찬욱 감독의 강렬한 맛이 아닌 점에서 상당히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바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과거의 작품들보다도 담백하지만 그 풍미의 깊이를 잃지 않고 오히려 더 고급스러워졌다는 점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인공 유만수와 함께 진행되어지며 그가 자신의 일자리의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러한 과정이 단순히 앞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일이면 좋으려만, 그 경쟁자 하나하나의 개인 사정에 깊이 공감하고 내지 이를 즉시 스스로에게 반영하는 모습은 그의 원초적인 인간의 성질이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이에 스스로를 대입하는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스스로 권총을 들고 누군가를 쏴 죽이는 이유 또한 그가 가족에게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무력함에 좌절해도 가족은 자신을 지켜주고 함께 짐을 짊어 지자는 너무나도 이상적인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그는 누군가에 공감을 하여도 본인의 밥그릇, 가족의 밥그릇을 위해 총을 들고 만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조금은 의아할 수 있다. 이렇게 공감하고 그의 심리에 바로 바로 따라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리버리 하면서도 그 일을 실행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답답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인물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가 성립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만수의 행동이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말하기에는 이미 다른 인물들로 그의 또다른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첫번째 제거 대상이었던 구범모는 엄청난 오디오 컬랙터로 누가 보아도 음악 카페만 운영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의 아내 이아라의 연기 실력이 밑 받쳐주는 접대 실력이라면 유명 카페가 되었을 것이다. 유만수 또한 상당한 분재 및 식물을 키우는 실력이 상당하여 누가 보아도 미래의 밥그릇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사람 모두 ‘종이 회사’에 다녔던 긴 세월이 과거가 아닌 미래 그리고 본인들 그 자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모두 다시 종이 업계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다음 제거 대상인 고시조 또한 종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해 현재는 구두를 판매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인 만큼 만수와 깊이 공감을 하며 그의 차가 고장 났을 때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앞세우며 고쳐주려고 하는 순간 그는 제거되어버린다. 게다가 그의 시신은 그야말로 똘똘 뭉쳐져 절대로 찾지 못할 곳에 묻히고 만다. 그렇지만 만수 또한 고시조처럼 구두 판매원으로 돌아가 가족을 위해 일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본인의 집을 지키기 위한 충분한 수입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며 결국 그는 다시 본인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종이 회사에 다시 들어가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제거 대상 인물인 최선출은 부인과 이혼하여 혼자 외로이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있었으며 이 또한 만수가 마주할 수 있었던 미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필자는 사회학과 인문학에 관심이 있기에 이러한 배경과 인물들이 비극적이고 참담한 영화로 비춰졌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남성 캐릭터들은 사회적으로 적당한 블루 칼라에서 예술 및 여러 예체능을 경험한 아내들과 결혼하여 중산층으로 한단계 올라와 안정을 누릴 줄 알았지만 이내 해고를 당해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본 중상층의 맛을 잊지 못하여 다시 자신이 가장 깊이, 오래 활약하고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만들어 주게 한 ‘종이 업계’에 계속해서 관심과 집착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참함은 과거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서도 비슷하게 그려지는 만큼 이번 작품과 비교할 수는 있지만 접점은 많이 보이지 않는 흐름이 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이 흐름을 놀라울 정도로 멀리, 차갑게, 그리고 담백하게 비추고 있다. 마치 자신이 만든 주사위를 굴리기만 하고 나오는 숫자를 기록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이러한 담담함이 있기에 필자는 영화의 완성도가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끝임 없는 미장센들과 화면의 비율들은 그야 말로 기가 막힌다. 애니메이션으로나마 구현이 가능할 것과 같은 미장센들의 화면들로 관객들은 완벽하고 짜임이 없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을 미장센만으로도 납득되어져 버린다. 그래서 필자는 오히려 이 작품을 영화관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한눈에 모든 미장센을 눈에 넣을 수 있는 휴대폰이나 태블릿들로 작은 화면에서 보는 것도 영화의 미장센에 대해 이해하고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한다. 물론 영화관에서 집중하여 보아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며 OTT에 올라온 다음에 다시 관람을 한다면 완벽한 복습이 될 것이다. 동시에 박찬욱 감독의 힘이 점점 쌓여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어느 장인이나 프로를 보면 그 뒤의 아우라 라는 것이 보이지 않던가. 이제는 영화에서조차 그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원작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 만든 것이 이정도라면 언젠가 그의 잠재력이 방출되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는 박찬욱 감독은 다시 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작품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요약 3줄
1. 담담함과 이를 받쳐주는 미장센의 정점
2. 캐릭터를 곱씹을수록 생각할 거리가 팡팡 터진다
3. 막을 수 없는 박찬욱의 아우라, 그리고 그 이상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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