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 엄마한테 잘하자

페이퍼무비 2023. 9. 1. 00:52

고삐 풀린 아리 애스터 감독이 그린 10 소년의 눈으로 공상 - 6/10

( 글은 영화 전체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입니다)

 

 

1. 보가 지내고 있는 아파트

 보가 지내고 있는 공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자 난장판이다. 그가 지내고 있는 주위로는 거지는 물론 미친 살인마가 돌아다니는 마치 그가 조커의 마지막 장면에서 난장판을 피운 것의 연장선처럼도 보였다. 그러한 보는 심리학자에게 매번 심리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지낸다. 그리고 한번도 없는 아버지의 기일에 맞춰 어머니에게 가려고 하였지만 그의 이웃에게서 계속되는 항의와 엄청난 소음으로 늦잠을 자서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결국 가지 못한다. 이렇게 영화는 다른 영화의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행운이 찾아오듯이 불행이 찾아온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만 모를 남자가 전화를 받아서 자신의 어머니가 샹글리에가 떨어져 그로 인해 머리가 산산조각이 정도로 심하게 시체가 훼손된 상태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는 점차 미쳐가 결국에는 거리에 나돌다가 차에 치이게 된다.

 

2. 보를 차로 의사 부부의

 눈을 뜨니 핑크핑크한 여자 아이의 방에서 눈을 뜬다.이유는 앞서 그를 차로 부딪친 의사 부부가 그를 데려와서 치료를 하고 돌봐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에게 치료를 해주고 어머니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주인공에게 다가오는 불행으로 그는 결국 가지 못한다. 대신 그녀의 딸이 데려다 주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단순히 그의 약점을 잡기 위함이었으며 이를 통해 그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한다. 그리고 같이 머물고 있는 아들의 친구이자 전쟁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군인도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의사부부의 딸에게 약점이 잡혀 있는건지 아니면 딸이 어마 무지하게 말을 하는건지 군인에게서는 어떠한 피해를 받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그에게 고자질 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인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는 마지막 , 그가 티비를 보자 티비속의 자신이 보였다. 여기서 과거의 모습도 찾아볼 있었지만 앞으로 잡아 당기면 자신의 미래의 모습까지도 비춰졌다. 이를 보고 혼란에 빠진 보에게 딸은 자신과 함께 이미 전사한 그녀의 오빠 방을 같이 꾸며 주기를 원한다(협박한다). 그녀의 오빠 방을 어지러트리던 도중 그녀는 보와 함께 죽기를 원하지만 보는 계속해서 거부한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페인트를 마셔버리자 어머니가 찾아와 사실 아들의 자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울부짖음과 자신의 집에서 치료중인 군인에게 찢어 죽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보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렇든 집은 전작인 <유전> 떠올리게 한다. 금수 좋아 보이는 부부와 말괄량이 그리고 멋진 아들이 점차 붕괴되어지는 모습을 너무나도 새롭게 그려낸 <유전>에서 호평을 받은 만큼 가족은 보를 들임으로써 점차 붕괴되어 지기 시작한다. 서로의 자리를 확신하고 있었지만 타인의 침입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된 사람들은 보에 대한 의심과 분노가 커진다. 분노는 스스로를 괴멸 시키며 결국 보는 이들이 머무는 집에서 도망칠 밖에 없게 된다.

 

3. 숲에서 만난 떠돌이 연극단과 가짜 아버지

 그렇게 숲을 떠돌다가 <미드소 아니라 속의 공연단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자연 속에서 머물면서 자연과 함께 되어 살아가는 엘프와도 같은 집단이다. 그리고 이들이 떠나지 직전에 연극을 하는데 우연히도 보는 이들의 공연을 보게 된다. 연극이 시작되고 보는 자신에게 얽힌 족쇄를 풀고 나아간다. 그리고 극중의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나중에 자신에게 찾아올 지도 모르는 마을과 운명적인 사람, 그리고 아들들을 만난다. 그는 자연재해로 인해 그들과 뿔뿔히 떨어지고 시간이 지나 그는 다시 마을로 돌아간다. 그리고 3명의 아들과 다시 재회하지만 이들은 묻는다. ‘어머니와 동침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리를 낳으셨나요?’ 말에 그는 답하지 못하고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보는 사실 유전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아 누군가와 성행위를 하는게 힘든 몸이었다. 이는 그가 나이가 되었음에도 혼자인지,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렇게 사실 연극과는 너무나도 다른 자신의 상상 끝에 어떤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는 사실은 보의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말을 남기지만 의사부부의 용병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리고 속의 살육 속에 살아나온 보는 도로로 나와 히치하이킹에 성공해 그의 어머니의 집에 도착하였다.

 

4.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옴

 어머니의 집에 도착하자 장례식은 이미 끝났으며 그는 혼자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의 시신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바로 어머니의 시신이 아니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가서 자신이 모델이 약들 광고 포스터를 바라본다.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약들을 먹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먹은 약의 종류만 수십종류에 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의 상태를 사실은 엄마에게 계속해서 감시당하고 심지어는 약까지도 그녀의 의도대로 먹어야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의 본가에는 그를 모델로 하는 약의 포스터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온 그의 첫사랑 엘리에. 그녀는 보의 어머니 밑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어머니의 장례식에 시간을 착각하여 모두가 떠난 시간에 혼자 찾아와서 보를 마주하게 된다. (아마 어머니가 시간을 다르게 알려준 뻔하다) 오랜만에 엘리에를 만난 보는 그들이 처음 만난 것과 같이 키스를 하고 아랫방으로 내려가 부비부비를 시작한다. (블로그에서 어디까지 있는 건지 애매해서 이렇게 표현하겠다)하지만 어느 여럿 영화와 같이 서로를 사랑하고 마주하면서 한다기 보다는 마치 보의 마지막을 기리는 듯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음악도 그들의 무드를 맞춰주면서 그들의 모습도 야릇하게 그려졌지만 우리는 보가 만약 절정에 다르면 그가 그의 아버지 처럼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만 의자 아래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외의 인물들은 아무도 모르는 듯이 말이다. 이렇듯 그는 절정에 다다르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죽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죽지 않았다고 놀람, 경악, 그리고 행복한 순간 위에 올라와 있는 엘리에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싸늘함에 놀란 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자 그에게 어머니가 찾아온다. 모두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그녀가 말이다.

 

5. 진실과 지옥의 재판

 어머니의 놀라지 않느냐는 질문에 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절규하면서 물어본다. 아버지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지 말이다. 분명 어릴 적부터 그녀는 보에게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고 설명하였고 또한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생존은 분명 충격과 함께 자신이 사실은 아버지와 같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런 그는 어머니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에게 그렇게 진실을 알고 싶으면 알려주겠다며 그의 어린 기억에 있었던 다락방에 올라가게 된다. 그렇게 올라가게 앞에 보이는 남자는 연극의 후반에 그가 하였던 머리와 비슷한 수염을 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들은 그가 아버지이구나 싶지만 뒤로 보야 라고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괴물이 등장한다. 형태는 남자의 성기 모양을 하고 있는 괴물이며 보는 이를 보고 경악을 감출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속에서 그를 사냥하고 있었던 군인이 나타나고 성기 괴물을 죽이려고 하지만 한방에 그가 죽는다. 경악하는 보가 내려오고 그의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빌기 시작한다. ( 뒤에 있는 가짜 심리학자가 그의 자발적인 행동을 보고 기뻐하는건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만)하지만 어머니는 보를 바라보면서 이제야 엄마가 필요한 거냐며 혼내자 그는 충동적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어머니를 죽이고 그는 근처의 호수로 나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바다로 나가던 도중 엔진이 고장이 나고 갑자기 위로 빛이 켜지면서  콜로세움처럼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형벌을 정하는 심판이 이루어 지는데 아무리 그와 그의 변호사가 변명을 하여도 그의 죄는 점차 늘어날 뿐이며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결국 자신의 아래에 깔린 덧에 죽고 관객들은 모습을 보고 영화가 끝나고 자리를 떠나는 관객들처럼 자리를 떠난다.

위의 틀들은 모두 보가 어느 혹은 집단에 속해 있다가 그로 인해 누군가가 죽은 그가 빠져나온다는 계속되는 굴레를 보여준다. 본인의 집에서는 자신이 무심코 열어둔 정문으로 노숙자들과 괴한들의 습격으로 아파트는 난리가 났으며 처음에 자신을 노리던 문신의 남자가 자신의 앞에 죽어있었다. 그리고 보가 집에 들어가 목욕을 위를 어떤 남자가 매달려 있었으며 포는 사투 끝에 남자가 (독거미로 추정되는) 거미에 물려 죽은 후에 보는 아파트에서 뛰쳐나온다. 그리고 곧바로 차에 치여 다음 집으로 넘어간다. 다음 집에서는 사람들과의 신뢰가 붕괴한 집의 딸이 죽은 다음 숲속으로 도망친다.하지만 도망친 끝에 자신의 아버지를 알고 있고 살아있다고 말하는 남자의 죽음 후에 또다시 도망을 친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엄마의 집에서 그는 그에 의해 사람이 죽는게 아닌 본인에 의해 에일리가 죽고 보가 직접 손으로 엄마를 죽이고 집을 빠져나와 결국 심판대에 올라선다. 이렇게 보는 누군가의 계속되는 죽음을 통해서 다음 배경, 장면, 그리고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는 항상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유전> 경우 새로운 형태의 공포 영화를 보여주었으며 <미드 소마> 또한 밝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호러적 경험을 영화에 그려 넣었다. 그런 그가 호아킨 피닉스를 주연으로 만드는 영화는 어떨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다.

 

 필자가 주구장창 줄거리를 이유는 영화는 해석을 떠나 굉장히 실험적인 영화라는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과학 실험을 그리고 예술적 실험을 진행할 답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도전에 의의를 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의의는 추후의 세대에 하나의 새로운 답으로 남을 수도 있다.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유전> <미드 소마>처럼 전통적인 호러의 틀을 깨는 동시에 자신의 실험적 연출들을 도입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려는 애스터 감독의 시도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의 연극 속에서 보여주는 보의 흐름과 영화 속의 또다른 연극의 이야기는 참신하였으며 부분에서는 좋은 이야기와 편집, 그리고 연출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 또한 항상 생각하는 이상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주연, 조연 또한 연기가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 평소에 영화를 광적으로 보는게 아니라면 작품만은 필히 피하시길 바란다. 필자도 애스터 감독의 작품을 좋아할 실험적인 영화를 많이 접한게 아니다. 영화는 영화 관계자와 창작자들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방정식과 공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은 처음부터 수익을 바라고 만든 영화가 아닌 아드 애스터 감독이 하고 싶은 아끼지 않고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만든 영화다. 특히 감독의 작가주의 성향의 영화를 대규모 자본으로 만들고 선보였다는 점에서 필자는 굉장히 부러웠다. 영화를 통해 아드 애스터 감독은 한발짝 성장하였지만 관객과 평론가들에게서도 한발짝 떨어졌다. 다음 작품에서는 중심을 다시 잡아 관객들에게 발짝 이상 다가와 주었으면 한다.